티스토리 뷰

속보전이란 걸 실감한 하루

 

아직도 생생하다. 77일 삼성전자와 LG전자 잠정실적 발표날이.

기자실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평상시와 달랐다. 아침 시간이라고 느긋하게 휴게실에서 신문을 훑는 사람도 한 명 없었다. 드문드문했던 삼성전자 기자실이 이전과 달리 붐볐고, 그 가운데서도 인사를 나누거나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하나 없었다. 다들 저마다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기에 바빴다. 마치 화라도 난 것처럼 노트북을 쏘아보고 있었다.

 

830. 삼성전자의 잠정실적 발표 시간이 닥쳤다. 연신 메일함의 새로고침버튼을 눌렀다. F5를 연타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기자실 내부가 온통 마우스로 클릭하는 소리와 노트북 키패드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아무리 눌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분명 어제 홍보팀에 전화해서 메일 리스트에 추가해달라고 별도로 당부의 말을 했는데. 걱정이 앞섰다. 그러다 832. 연합뉴스에 삼성전자 잠정실적 60조 원의 매출, 14조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는 속보가 올라왔다.

 

후다닥 속보 처리를 한 뒤 자료를 찾아 2보를 올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란 걸 실감했다. 첨부 자료를 제공해주는 국장님과 분석기사는 자신이 맡을 테니 보도에만 신경 쓰라고 격려하는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응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기사를 쳐나갔다. 타자를 치면서도 눈은 다른 웹페이지의 정보를 훑고 있었다. 문장의 매끄러움과 오타 여부를 점검할 새도 없이 엔터를 치자마자 웹전송으로 전송됐다. 1, 2, 상보까지 모두 마치고서야 숨 고를 틈이 생겼다. 9시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빗소리가 잦아들 듯 주변에서 노트북 키패드를 뚜드려대던 소리가 약속이나 한 듯 서서히 멎었다.

 

오후 3시 전후로 진행된 LG전자 잠정실적 발표도 다를 바 없었다.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바빴지만 그 과정에서 연합뉴스와 타 매체의 실수를 포착한 게 아직도 기억에 난다. 1보를 누구보다 먼저 쏜 연합뉴스는 “2분기실적을 “1분기로 올려 베끼는 와중에 실소를 자아내게 했고, 타 매체는 2분기 매출을 공개했다란 문장을 지난 2분기 매출을 공개했다로 써버려 순간 혼란을 자아냈다. 그렇게 LG전자의 잠정실적까치 무차별적으로 처리한 뒤 고개를 드니, 어느새 금요일이 저물고 있었다.

 

사실 속보에 연연해하는 언론의 속성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 과정에서 비롯될 수 있는 오보, 논리부족, 비문 및 오탈자 발생 등 기회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느꼈던 뭔지 모를 묘한 긴장감, 스릴 같은 것들은 나쁘지 않았다. 첫 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법이다. 누군가 내게 기자로서 너무 바쁘지 않느냐고 물어온다면 201777일에 있었던 얘기를 해줄 것이다. 내가 1분에 100번도 넘게 새로고침버튼을 눌렀던 그날을.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