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번개가 치던 밤이었다. 멀리서 비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러폐를 마셨다. 차양 아래서 평온히. 이 곳은 충분히 그래도 되는 곳이니까. 미얀마 전통 차인 러폐의 밍밍하면서도 특유의 깊은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먼 산봉우리 너머로 시선을 던져 언제쯤 공기 찢는 천둥소리가 들려올까, 가늠해보는데 의외로 소리가 난 곳은 저 먼 산 너머가 아닌 바로 등 뒤의 시멘트 집이었다. 미얀마 현지 친구이자 우리들의 서포터인 솔리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의 인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그는 짐 싸기를 멈추지 않았다. 2주 정도 생활할 요량으로 펼쳐놓은 옷가지와 잡다한 소지품들을 닥치는 대로 가방으로 쑤셔 넣을 뿐. 5분을 갓 넘길 무렵 가방은 처음 이곳에 왔던 때보다 부풀어 오른..
좋은생각 제1회 청년이야기 공모전 동상 결국 다 살아가는 것 한국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20대로, 청춘으로 살아가는 게 싫었다. 실망감인지 회의감인지 모를 것들이 언제부턴가 가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고, 답답했다.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굴에 빠지는 것만큼 짜릿하거나 즐겁지 않았다. 한 두어 번의 술자리와 MT가 고작이었고, 이후엔 제각기 살길을 찾아 학교와 방만 오가는 생활의 반복뿐이었다.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대학교란 건 참, 고등학교의 연장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맞닥뜨리게 된 이십대의 절반. 스물하고도 다섯 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날아가는 꿈을 자주 꿨던 게. 자원활동이란 이름 하..
얼마 전부터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고민. 돈이냐 아니면 가치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어느덧 4학년이 문턱에 와 있었다. 평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어깨너머로 슬쩍,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물으신다. 당연히 현문우답(賢問愚答)으로 “어머니, 오늘따라 달이 밝습니다.”고 대꾸하고 넘어가기는 하나,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이번 학기에 들은 강의 중 ‘취업전략강의’란 교과목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취업 관련 강의로, 학교를 우리보다 일찍 졸업한 선배들이 찾아와 취업과 관련한 노하우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의 수업. 다양한 직종에서 많은 선배들이 찾아왔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잡지사에서 일했던 선배도 있었고, 중·소기업의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일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