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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rticle/Article ( Kor )

한 밤의 소동

JinooChinoo 2017. 2. 6. 23:23



멀리서 번개가 치던 밤이었다. 멀리서 비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러폐를 마셨다. 차양 아래서 평온히. 이 곳은 충분히 그래도 되는 곳이니까. 미얀마 전통 차인 러폐의 밍밍하면서도 특유의 깊은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먼 산봉우리 너머로 시선을 던져 언제쯤 공기 찢는 천둥소리가 들려올까, 가늠해보는데 의외로 소리가 난 곳은 저 먼 산 너머가 아닌 바로 등 뒤의 시멘트 집이었다.

 

미얀마 현지 친구이자 우리들의 서포터인 솔리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의 인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그는 짐 싸기를 멈추지 않았다. 2주 정도 생활할 요량으로 펼쳐놓은 옷가지와 잡다한 소지품들을 닥치는 대로 가방으로 쑤셔 넣을 뿐. 5분을 갓 넘길 무렵 가방은 처음 이곳에 왔던 때보다 부풀어 오른 채 솔리의 손에 들려있었다. 나 지금 가야돼, 란 말을 미얀마어로 낮게 읊조린 그는 단호히 나무문을 열었다. 콰앙. 콰아앙. 촤아아아아악


소리의 근원은 문이 아닌 하늘이었다. 때마침 도착한 번개는 타지에서 온 우릴 겁줄 요량인지 무자비하게 하늘을 갈랐다. 천둥소리에 놀라 나머지 멤버들도 호들갑을 떨며 문 앞으로 모였다. 미얀마 친구는 집 밖으로 한 치 앞도 갈 수 없단 사실에 붙들고 있던 가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내연애의 들통 그리고 여자 친구의 방황으로 요약될 정도로 사연은 간단했다. 일하던 회사에서 남몰래 연애를 했는데, 특히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여자 친구의 이모님 모르게 만나고 있었는데 하필 파견 나와 있는 지금 들통이 났다는 것. 여자 친구가 양곤이란 시내에서 이모님 댁에 얹혀 지내고 있었는데 이 일로 이제 생활할 곳마저도 마땅치 않다는 게 요지였다. 때문에 하루 빨리 수도인 양곤으로 넘어가 괴로워하는 여자 친구 옆에 있어줘야 한다고 그는 토로했다. 치정(癡情)에 얽인 일이라 치부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겠지만 그의 눈은 진지했다. 딱 우리가 열아홉 혹은 스무 살 즈음에 겪는 사랑앓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의 눈에서 우리들의 아픈 과거를 엿본 탓인지, 몇몇은 전기 하나 들어오지 않는 외진 마을에서 희미한 랜턴 불빛 주변으로 모여 앉아 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와 조언들을 풀어놓았다. 한 때 우리가 그랬고 또 그랬었던, 찌질하지만 소중했던, 흔히 첫사랑으로 묻혔던 그 기억들을 말이다.

 

귓잔등으로 흘려버리는 척, 애써 담담한 척 밖으로 나와 먹다 남은 러폐를 마저 마셨다. 문 사이로 새어나오는 이야기소리는 억수같이 퍼붓는 빗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러폐는 그새 식었는지 밍밍할 뿐, 이도저도 아닌 맛이 났다. 특유의 깊은 맛이 있긴 했는데.

 

그녀의 괜찮다는 음성이 담긴 늦은 밤 중 전화를 받고서야 우리 다섯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질 수 있었다. 투룩투룩. 촤아아아악. 새벽녘 비는 더 거세져 우박까지 동반된 채로 내렸지만 전만큼 위협적이진 않았다. 한 쪽 구석에서 현지인 친구는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연인의 전화소리에 안심하면서 바닥에 등을 누이었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언제쯤 있었을까, 궁리하며 가만히 천장을 보는데 문득 이곳까지 흘러온 한국인 친구 넷도 나와 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을 거란 짐작이 들었다. 스물 중반 언저리의 대학생 해외봉사단원 넷. 사랑도 일도 삶도 모두 한 풀은 꺾여버린, 타올랐다면 이젠 잔열로 아리게 남았을. 나의 옛 사랑도 떠나고, 그토록 하고팠던 일도 결국 이상(理想)이 아니었던, ‘이젠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 하던 중 여기까지 흘러와버린 이십대 중반의 우리들, 그리고 나

꽤나 러폐와 닮았다는 생각. 그렇게 한참을 빗소리 듣는다는 핑계로 깨어있다 새벽이 깊고서야 천방에 박아두었던 시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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