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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타고르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조선 청년에게 전한 시() 전문이다. 그의 저서 내셔널리즘을 읽기 전, 자료 조사 차원에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발견하게 됐다. 일제치하 당시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며 읽다 보면, 이음새 맞는 부분이 꽤 있다. 인상 깊었다.

 

The Song of Defeated

 

My Master has asked of me to stand at the roadside of retreat and sing the song of the defeated.

For she is the bride whom he woos in secret.

She has put on the dark veil, hiding her face from the crowd, the jewel glowing in her breast in the dark.

She is forsaken of the day, and God's night is waiting for her with its lamps lighted and flowers wet with dew.

She is silent with her eyes downcast; she has left her home behind her, from where come the wailing in the wind.

But the stars are singing the love song of the eternal to her whose face is sweet with shame and suffering.

The door has been opened in lovely chamber, the call has come; And the heart of the darkness throbs with the awe of expectant tryst.

 

하지만 시와 책은 달랐다. 서두 1부 일본에서의 내셔널리즘에서부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타고르는 일본에 대해 논하며 일본이 동아시아의 리더로서 해야 할 역량 및 기대를 본문 곳곳에 내비쳤는데, 그런 바람은 문장에 따라서 때론 찬양으로까지 느껴졌다.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6년도에 개최된 강연이란 시기성을 고려한다 한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일본의 비도덕적인 행적을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아시아의 모든 국가 가운데 일본이 서양으로부터 얻은 재료들을 자신만의 천재성과 필요에 따라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의 국가적 단결은 방어나 공격을 목표로 하는 군대식 전우애나, 또는 위험을 분산하고 강도짓을 노획물을 함께 나누는 침략 활동의 협력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다.”

 


러일 전쟁, 한일 합병 등 당시에도 일본의 만행을 증명할 만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의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참고한 원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Of all countries in Asia, here in Japan you have the freedom to use the materials you have gathered from the West according to your genius and your need.”

“Japan you have the freedom”이라는 전제(前提)가 의역 과정에서 생략된 탓에,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 특히 일본을 묘사한 본문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웠다. 첫째가 글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그의 세계관과 통찰력이었고, 둘째가 수사학적인 문장들이었다. 요즘이야 3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미디어(media) 앞에 매스(mass)가 자동으로 따라붙을 정도로 정보가 흘러넘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도 않았을 테다. 그럼에도 그 많은 정보를 꿰고 있었던 것과 동시에 그를 바탕으로 세계의 흐름까지 읽어냈다니. 말 그대로 놀랄 노였다.

 

2부 서양의 내셔널리즘에서도 서양의 양면성을 논리정연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유럽의 문화, 정치, 사회 등 다방면에서 그들이 일군 발전은 두 손 받들어 환영할 만한 업적이지만, 국가란 탈을 쓰고 타국 및 제3세계를 대하는 방식을 보자면, ‘같은 유럽이 맞나?’란 의심이 들 정도로 상이하다며 꼬집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대 정부를 비교하며 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견해가 아닌, 두 측면 모두를 아우르며 장단점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역시 지식인의 글이라 칭할 만했다.

신발이 바로 국가에 의한 정부이다. 꽉 조이고 닫혀 있어서 우리의 발걸음을 통제하며 그 속에서 우리의 발은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유만을 갖게 됐다. 따라서 이전의 우리의 발이 밟아야 했던 자갈의 숫자와 현재 체제의 소량을 비교하는 통계를 내는 것은 논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고르는 국가란 체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위와 같은 비유를 들었는데, 단순 비유만이 아닌 역설, 나아가서는 풍자까지 내포한 문장으로 읽혔다.

 


마치 그의 직업이 강연자가 아닌 시인이란 점을 목 놓아 부르짖기라도 하는 듯이, 수사학적인 표현과 시적 비유가 꽉 채워진 글이었다. 문장 사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던 비유들 -“술에 취한 사람은 술에 취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마치 최고로 훌륭한 음식을 독약과 함께 대접하는 것과 같다.”, “국가란 개념은 인간이 발명해낸 가장 강력한 마취제이다.”- 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읽는 내내 그가 꿈꾸는 이상주의자라 여겨져 아쉬웠다. 왜냐하면 인류와 국가의 발전에 있어서 밝은 면보다는 어두운 면이 부각됨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희망이란 리본끈을 맥락마다 달아놓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글의 말미 부랑아조차도 내게 비현실적이라는 모멸적인 말을 내뱉기 쉽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언급하며 비난의 일정 부분을 수용하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아집이라기보단 신념을 지키는 자세였다, 랄까.

‘100여 년 전 강연을 기록한 글이 이 정도인데 조금 늦게 태어나 현대의 세태에 관해 글을 쓴다면 어느 정도일까?’ 가늠해보고 싶게 만드는 그런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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