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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력이 적게 느껴져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해질 때

 


한식 시험장이었다. 과제는 생선전. 동태 한 마리가 수험자들에게 배부됐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무섭게, ()테이블에서 일사불란한 손놀림이 시작됐다. 나 역시 동태를 씻어 적당한 크기로 손질했다. 적당량의 밀가루, 풀어둔 달걀도 알맞은 크기의 접시에 담았다. 풀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올려둔 생선전이 프라이팬 위에서 익어갔다. 노릇노릇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때 옆 아주머니의 손이 테이블 간 경계를 넘어 내가 풀어둔 계란물로 향했다.

 

마주친 눈은 이마에 패인 주름만큼이나 많고 자잘한 잔주름을 지니고 있었다. 아주머니와 할머니, 그 사이 어디쯤 돼 보이는 분은 애처로운 눈으로 내 눈길을 받았다. 그 눈은 분명 부탁을 구하는 눈이었지만, 뭔지 모를 살기를 담고 있기도 했다. 아주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계란물을 두어 번 생선전에 뿌린 뒤, 다시 접시를 내 테이블로 옮겨뒀다.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러시면 안 돼요”, “규정 위반이라 안 됩니다란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날 비록 시험에서는 떨어졌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눈과 표정이 생겼다. 애처로운 눈빛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생에 의지를 지닌 얼굴. 그 기세에 취미로 요리에 도전한 알량한 내 깜냥은 눌릴 수밖에 없었다.

 

시험에서 떨어진 그날. 나는 평생 잊지 못할 눈빛과 표정을 보았다. 애처로운 눈빛으로도 감춰지지 않았던 생의 의지를. 그 기세에 취미로 요리자격증에 도전한 알량한 내 깜냥은 눌릴 수밖에 없었다.

 


타인의 노력과 열망을 다시 엿봤던 자리는 조선일보 인턴기자 면접장 대기실에서였다. 1년 반 학교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회의감에 언론계를 등지고 돈 버는 스펙쌓기 열중하느라 3년을 보냈다. 졸업을 앞둔 시기. 주제넘게도 1년 반 경험했단 걸 앞세워 시범 삼아 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장까지 오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뭔가 하나에 열정과 노력을 쏟고 있는 사람들을.

 

몇 년이 지나 그런 생의 의지를 다시 엿봤던 자리는 조선일보 인턴기자 면접장 대기실에서였다. 1년 반 학교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회의감에 언론계를 등졌었다. 차라리 돈이나 벌자며 돈 되는 스펙쌓기에 열중했던 3년이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둔 시기에 주제넘게도 1년 반 경험했단 걸 앞세워 시범삼아 지원서를 넣었고, 면접장까지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절박함과 간절함. 두 형용사는 마치 그네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대기실에 앉아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해온 자료를 입으로 달달 외는 그들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준비조차 하나도 하지 않았던 난 말 그대로, 그깟 면접비를 받으러 온 것이었다. 그들을 보며 나로 인해 이곳에 오지 못한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을 떠올렸다. 그 혹은 그녀는 기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그 뒤엔 우습고, 또 주제넘게도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오늘 CJ E&M 서류 통과자가 발표됐다. 운이 좋게도 붙었다. 들뜬 기분으로 CJ그룹 종합적성검사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고, 다른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고자 기자직 준비를 위해 매일같이 접속하던 다음카페 아랑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글 하나를 마주했다. CJ에듀윌 적성검사 책을 판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번에는 붙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발표 전에 서점가서 미리 인적성책 샀어요..”란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분명 방금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보다 더 설레고 또 굳은 마음가짐으로 서점을 찾았을 글쓴이의 모습이 그려졌다. 푸념 섞인 글을 그 외에도 더러 있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고, 정성껏 작성해서 붙은 서류전형인데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글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한숨만 나왔다. 노력과 열정을 수치화할 순 없겠지만 PD란 직군 하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그네들만큼이나 나 역시 간절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이 기분이 조금 묘할 뿐이다. 마냥 좋지만은 않은 이 기분. 이럴 때면 내 노력이 적게 느껴져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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