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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면 이웃, 색깔을 알면 친구, 모양까지 알면 연인이 되는 비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 , 이것은 비밀


시 전개에 맞춰보자면 나와 이 회사는 이제 막 이름을 알고 난 사이다. 통성명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처음이 힘들 듯, 그 이름에 익숙해지기가 꽤 힘이 들었다. 526일 저녁. 첫 출근한 날로부터 꼬박 4일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4일 중 이틀은 머리가. 나머지 이틀은 몸이 아팠다.

 

취업계를 인정해줄 수 없다는 교수님의 단언은 칼 같았다. 최근 참석한 교무회의에서 수업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의 출석을 교수 재량으로 인정해주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고 들었다며 교수님은 한사코 고개를 내저었다. 김영란법에 따라 개정된 학칙에 의거해 학교 측에서 학생의 출석을 인정해준다는 취업지원센터의 방침을 듣고도 반신반의한 눈초리였다. 바삐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 내 사정도 모르고 시간은 재깍재깍 야속하게 흘렀다. 속은 갈수록 타들어갔다. 흡사 교수님, 취업지원센터, 회사 이 세 영역 사이에서 홀로 이겨내지 못할 줄다리기를 버텨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터였을까. 취업계 관련 서류 제출을 마무리한 날. 홀가분한 마음에 그간 쌓인 회포나 풀자, 란 취지로 들이켠 맥주와 치킨이 얹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새벽 3시경 가스활명수를 찾아 편의점을 이 잡듯 뒤졌다. 사이다까지 마셨는데도 더부룩한 속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출근길 지하철 역사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고 난 뒤에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회사 행사장에서 실로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마주했음에도 칼질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덕수궁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디움 정도로 익혀진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던 내 모습, 스스로 보기에도 처량하니 그지없었다.

 

회사에서 각 부처 부서장과 팀장 그리고 사장님이 들려준 조언과 이야기는 충분히 값지고 소중했다. 광화문으로 첫발을 내딛는 기념비적인 시기에 입사한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우리가 성장하는 것보다 회사가 더 빨리 성장하는 걸 보여주겠다는 말씀은 아마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거다. 단순히 우리를 기사 쓸 노동자가 아니라 한 식구처럼 대해주는 느낌도 좋았다. 허나 이번 주 내 머리와 몸 사정이 온당치 못해 뼈가 되고 살이 될 격언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아마 수습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다음 주부터가 내겐 제대로 된 수습기자로서의 첫 출근이지 않을까, 싶다.

 

아래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 구절 중 가장 익히 알려진 구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와 이 신문사도 장차 이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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