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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초등학교에 잠시 볼 일이 있어 오랜만에 옛 동네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 몇 년이나 흘렀을까. 한 때는 꽤나 익숙한 상가와 거리들이 가득했던 곳이었는데, 이젠 옛 모습 찾기조차 힘들 정도로 많이 변해있었다. 그 중 가장 날 놀라게 했던 건 옛날에 살던 집.
좁다란 골목에 가로등 하나 우두커니 섰던 게 고작이었던 그 곳. 이웃집 벽면에 벗겨진 페인트칠 자국을 따라 걷다보면 금세 마주하게 되는 첫 번째 집. 케케묵은 시멘트와 달리 쇠 문 하나만큼은 새 것처럼 빛이 났었는데, 그런 집이 이제는 차가 쌩쌩, 하며 지나는 도로 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이웃집 안방 벽과 화장실 창, 현관문 따위의 것들로 일궜던 그 시절 골목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온데간데없어져 버렸다. 재개발과 도로 확장이란 명목 하에 내 지난 시절의 추억들까지도 새로 난 도로 아래로 묻혀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만히 집을 보고 있자니 그냥 집인데, 마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이를 보는 것 같아 뭔지 모를 씁쓸함이 입 안에 뱄다.
그 시절 골목은 우리에게 단순히 집으로 향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 그 이상이었다. 변변한 놀이터도 없었던 당시. 그 공간이 내겐, 그리고 우리들에겐 놀이터였다. 어른 하나 지나기도 녹록치 않은 좁은 길에서 친구들 네다섯 명을 모아 축구를 하기도 했고, 야구를 하기도 했던 기억들. 아마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다.
평평치 않은 시멘트 바닥에서도 딱지를 쳐보겠다고 좋은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맨 것은 물론, 손가락 살이 갈리고 헤질 때까지 쳐댄 건 덤이었다. 그 흔한 핸드폰도, 로드뷰도 없었던 때. 그 많은 친구들의 집을 외우고 다녔던 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밤새 놀다 햇빛조차 골목길 사이로 들지 않는 시간이 오면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곤 했었던 그 시절의 우리.
처음 골목길에 가로등이 설치됐던 때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이제 밤이 늦어도 집에 안 들어가도 되겠다며 친구들과 좋아라, 하며 주광등이 켜지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이지만 단 몇 개의 불빛만으로 그리도 밝을 수 있었던.
이따금씩은 그립다. 밤마다 꺼지지 않는 불빛, 간판에 휩싸인 번화가의 요즘보다 골목길에 켜진 소박한 가로등 불빛 그 하나가. 그 골목을 누비던 어린 시절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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