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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르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카스트 제도란 족쇄

 

타고르의 글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매력적이다. 앞서 일본과 서양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논한 대목에서도 그는 쉽게 한쪽 측면에 쏠린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장단점을 두루 살피며 서술했다. 균형 있는 시각은 제 3<인도에서의 내셔널리즘>에서도 이어졌는데, 특히 이 장에서는 인도 특유의 계급체계인 카스트 제도와 맞물려 전개됐다.



하지만 그의 이와 같은 접근이 카스트 제도를 다룰 때에도 과연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인도란 나라 그리고 국가란 개념에 적용할 때에는 그 깊이가 굉장했지만, 카스트 제도를 논한 부분에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 문맥을 억지로 이어나가다 자가당착에 빠졌단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흡사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등지에서 원주민들이 원숭이 잡는 방식을 떠올리게 했다. 원숭이 덫을 놓는 건 의외로 간단한데, 코코넛이나 단단한 흙더미 안에 홈을 파고 냄새 좋은 곡물이나 음식을 조금 넣어두면 완성이다.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덫에 다가가 음식을 꺼내려 하지만 홈이 워낙 작아, 곡물을 한가득 틀어쥔 손은 그 좁은 구멍을 빠져나올 수가 없다. 이때 원주민이 가서 포획하면 되는데, 그 순간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잡히는 원숭이가 태반이다.



누가 봐도 부정적 측면이 뚜렷한 카스트 제도에 대해 어떻게든 긍정적 측면을, 사소하게나마 양면을 바라보려는 그의 고군분투는 덫에 빠진 원숭이와도 같았다. 다인종과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그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이러한 관용 정신의 결과물이다. 다른 인종들이 자신만의 특징을 유지할 수 있는 자유를 실컷 누리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적 통합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인도는 줄곧 실험을 해오고 있다.”고 서술했는데, 이는 논리적 비약이 심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언급한 국가의 부정적 측면을 간과한 문장이다. 카스트 제도가 경쟁에 의한 끝없는 질투와 증오를 가라앉히는 효과를 가져왔다.”란 말도 마찬가지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애초에 카스트란 제도는 그가 그토록 비난한 국가란 체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아리아인이 인도를 침략한 후 아리아인 왕조를 세우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데, 그 중 잉태된 것이 브라만 문화다. 당연히 선()주민들은 농민, 상인 등 잡역에 속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도 끼지 못한 피()정복민은 불가촉천민, 즉 수드라로 전락했다. 국가에 관해 서술한 부분을 살펴보면 그것은 한 인간 전체가 조직된 힘의 양상이다. 이러한 조직은 사람들이 강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요구한다.”고 나와 있는데, 카스트 제도 자체가 그러한 효율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례로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하고서 동인도회사를 건설하려 했을 당시, 카스트 제도와 같은 분업 시스템을 무너뜨리고자 했었다. 그러나 도리어 생산성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여, 중단한 바 있다.


물론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을 테고 공식적으로도 카스트 제도가 폐지되기 이전이란 점, 충분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어쩔 수 없다. 저자 또한 카스트 제도의 부정적 측면을 조망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 강도가 마치 숫돌에 갈아둔 칼을 두고서 애써 무딘 칼날을 들이대고 있는 형국이었다. 유럽을 비롯한 서양 문명에 대해선 그토록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대고서 정작 자국의 치부(恥部) 앞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이라니. 안타까웠다.



과거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미국 평화봉사단 출범을 앞두고 인도 네루 총리에게 자문을 구했던 적이 있었다. 평화봉사단을 만들어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네루 총리는 답했다. 좋은 생각이라고. 미국 젊은이들이 인도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같은 인도인으로서 타고르 또한 위와 같이 자신감에 꽉 차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그게 글에서 발현됐으면 훨씬 더 좋은 글이 남겨지지 않았을까, 가정해 본다. 비록 가장 덧없는 가정이 과거에 만약을 덧붙이는 거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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