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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경향신문에서 '부들부들 청년'이란 제목으로 기획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어.

제목에 걸맞게 내용에는 분노로, 슬픔으로 그리고 불행으로 떨고 있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주(主)를 이루지.

헬조선, 금수저란 말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폭풍공감을 얻어 이미 대다수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가 됐고

삼포세대와 88세대란 말은 귀로 더이상 듣고싶지 않을 정도로 지겨울 지경이 됐잖아?

나도 대한민국의 청년 중 하나인데, 기사를 하나하나 훑으며 공감할 수밖에. 더러는 지나치게 과한 내용으로 반감이 들었지만 그것도 일부에 불과해 참아줄 만 했어.



그런데 문제는 연재 기사 중 김연수의 말을 언급한 기사.

제목 : "분노하라, 행동하라" "징징대지 마라, 도전하라"... 언론도 두 얼굴

소설가 김연수씨는 중앙일보 1월 10일자 <'나의 성생활'과 '나랑 상관없음'?>에서 "유신 시절의 젊은이와 삼포세대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나는

스마트폰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삼포세대를 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라는 내용이야.

위에서 언급했듯 총체적 기획 기사의 내용은 청년들의 울분을 담고 있어. 인용한 개별 기사는 청년 문제에 있어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청년 세대의 적극적 움직임을 바라는, 혹은 그것도 안 되면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는 언론의 이중적 태도를 다룬 기사고.

이러한 맥락에서 인용된 김연수의 말 덕분에 내게 자연히 그는 '힘듦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단 지금이 낫다.'란 맥락으로,

여느 기성세대 생각과 다름 없는 정도로 인식됐어. 그 맥락이 딱 그랬다니까. 부정적 인상이 든 것도 당연하지. 

'고작 스마트폰 때문에 지금의 헬조선을 택하겠다고?'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난 건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였어. 대학생자원활동 '라온아띠'의 멤버로 미얀마로 가게 되면, 핸드폰 사용이 제한되다는 얘기를 듣고난 후였지.

많은 생각이 오가더라고. 소통 단절부터 시작해 핸드폰에 깔린 사전 앱, 간단한 카메라 등 그간 누려왔던 당연했던 혜택들이 이제 제한된다는 게 머리를 꽉 메웠어.

그새고 떠오른 게 김연수의 '스마트폰' 그리고 삼포세대.

괜한 오기가 생기더라고. 정말 스마트폰 하나 때문에 지금의 청년을 택하겠다는 그의 말이 안일하게 들렸기 때문에. '내가 핸드폰 없이 5개월을 지내온 뒤,

핸드폰 없는 삶보다 핸도폰 있는 현재 한국에서의 삶이 더 별로라는 걸 증명해주겠어.'라는 치기어린 배짱도 허파에 바람을 불었어.

확인사살이라도 해볼겸 기사 원문을 찾아봤어.

그리고


전혀 다른 내용의 기사를 봤지.

김연수가 인용된 문장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건 다음과 같다.

"연애든, 경제성장이든, 개인의 행복이든 크고 많기만을 원하던 시절은 이제 모두 끝났다. 우리 앞에는 이제 소소한 이윤을 위한 생산, 소소한 만족을 위한 소비, 소소한 행복을 위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내용이냐고? 이게 그 내용이야. 아까 위에서 인용됐던 김연수의 기사가 전하고자 싶었던 말, 주제가 바로 저거야.

글의 방점은 과거보다 지금이 스마트폰보다 낫다, 란 식의 문장이 아니었어. '스마트폰'은 70, 80년대 젊은이들이 직면했던 불합리한 시스템과 제한된 정보 등의 사회적 고통을 해결해준 현대 문명의 기기 중 하나인 예시로 나타났을 뿐. 글 전체의 맥락을 꿰뚫는 주제가 아니었어. 때문에 주제도 아닌 문장 일부분을 성격이 다른 글에 인용해 오해가 빚어졌던 거지. 기사를 썼던 기자도 이를 모르진 않았을 터. 그런데도 이렇다니. 분노라기 보다는 아 뭔가, 좀 아쉬웠어.

좋은 취지라 여겨 자주 찾아보곤 했던, 몇 안 되는 기획 기사였는데 이런 식으로 인상이 잡혀버리면 앞으론 보기가 영 재미없어져버리잖아.


해당 기사의 기자를, 경향신문이란 매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이런 문제점들을 익히 듣고, 알아놓고도 원문은 찾아 읽으려 하지 않은

나의 게으른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려 글을 남겨. 나 또한 오해를 사는 데 한 몫 했을 테니까.

다만 이렇게 또 신문에 대한 신뢰를 잃고 의심을 해야 한다는 게 참... 골치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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