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르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카스트 제도란 족쇄 타고르의 글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기에 매력적이다. 앞서 일본과 서양의 내셔널리즘에 대해 논한 대목에서도 그는 쉽게 한쪽 측면에 쏠린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장단점을 두루 살피며 서술했다. 균형 있는 시각은 제 3부 에서도 이어졌는데, 특히 이 장에서는 인도 특유의 계급체계인 카스트 제도와 맞물려 전개됐다. 하지만 그의 이와 같은 접근이 카스트 제도를 다룰 때에도 과연 효과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인도란 나라 그리고 국가란 개념에 적용할 때에는 그 깊이가 굉장했지만, 카스트 제도를 논한 부분에서는 아귀가 맞지 않는 문맥을 억지로 이어나가다 자가당착에 빠졌단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흡사 인도네시아나 미얀마 등지에서 원주민들이 원숭이 잡는 방식..
멀리서 번개가 치던 밤이었다. 멀리서 비구름이 서서히 몰려오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러폐를 마셨다. 차양 아래서 평온히. 이 곳은 충분히 그래도 되는 곳이니까. 미얀마 전통 차인 러폐의 밍밍하면서도 특유의 깊은 맛이 입 안을 맴돌았다. 먼 산봉우리 너머로 시선을 던져 언제쯤 공기 찢는 천둥소리가 들려올까, 가늠해보는데 의외로 소리가 난 곳은 저 먼 산 너머가 아닌 바로 등 뒤의 시멘트 집이었다. 미얀마 현지 친구이자 우리들의 서포터인 솔리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방 안으로 들어서는 나의 인기척을 들었을 텐데도 그는 짐 싸기를 멈추지 않았다. 2주 정도 생활할 요량으로 펼쳐놓은 옷가지와 잡다한 소지품들을 닥치는 대로 가방으로 쑤셔 넣을 뿐. 5분을 갓 넘길 무렵 가방은 처음 이곳에 왔던 때보다 부풀어 오른..
좋은생각 제1회 청년이야기 공모전 동상 결국 다 살아가는 것 한국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20대로, 청춘으로 살아가는 게 싫었다. 실망감인지 회의감인지 모를 것들이 언제부턴가 가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고, 답답했다.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굴에 빠지는 것만큼 짜릿하거나 즐겁지 않았다. 한 두어 번의 술자리와 MT가 고작이었고, 이후엔 제각기 살길을 찾아 학교와 방만 오가는 생활의 반복뿐이었다. 시험만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노라면 대학교란 건 참, 고등학교의 연장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맞닥뜨리게 된 이십대의 절반. 스물하고도 다섯 살.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떠나버리는, 날아가는 꿈을 자주 꿨던 게. 자원활동이란 이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