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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방 서랍장에서 먼지 쌓여가던 책 하나가 눈에 띄더라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양장본인데도 매끈한 커버, 으레 양장본에 두르는 그 흔한 커버 하나 없어 느낌이 더 올드하고 좋았어.
책엔 한 남자가 등장해. 그 남자는 급하게 운전기사를 구해야 하는 처지지. 운전이란 일에 있어서 주인공은 남자를 선호하지만 정작 소개받은 기사는 여자였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시범운전을 해보니 솜씨가 꽤나 괜찮은 거야. 적당히 예쁘지도 않아 주변의 오해를 살 일도 없겠다, 싶고.
그렇게 둘은 한 차에 몸을 싣게 됐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돼.
가후쿠라는 한 남자는 아내를 잃은 중년의 배우야. 아내는 왕년에 꽤나 잘 나갔던 미모의 여배우고. 새로 채용된 미사키라는 여기사는 말수가 적고 담배를 피는 게 특징. 여느 여자와 닮지 않아 묘한 매력을 풍긴다는 것도 이목을 끌지. 어머니는 어린 날 여의고 아버지는 생사를 알 수 없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아.
둘의 성향 탓에 차 안는 굉장히 조용한 날들이 많아. 그러다 이따금씩 공기 사이를 비집고 그들의 대화가 열리지. 친하지 않은 사이답게 적잖은 어색함도 감돌고.
아직 책의 전반부에 머물러있어 앞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어 적어두고 가려 해. 술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다 나온 내용인데, 퍽 괜찮은 거 같아서.
"가후쿠가 보기에, 세상에는 크게 두 종류의 술꾼이 있다.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를 보태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서 뭔가를 지우기 위해 술을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다."
-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술과 함께한 밤들을 이 단 두가지로 정의내리기는 참 힘든 거 같애. 보태기 위한 자리였느냐, 아니면 비우기 위한 술잔이었으냐.
하지만 지금. 어느새 반 오십이 됐고, 삼촌이라 불려야 하는 처지에까지 다다른 지금. 내 성향 정도는 파악이 돼. 아마 이제는 후자쪽에 가까울 거란 거? 명백히.
전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어. 그들이 있어야 술자리 분위기가 좀 더 살 것 같고, 또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테니까. 대학 새내기 시절엔 나도 뭔갈 채우러, 보태기 위한 목적으로 술자리를 가졌던 때가 잦았던 것 같아. 비우기 보단 항상 뭔가에 목말랐던 시기였으니까. 그러다 이른 스물 다섯. '퍽이나 늙었다.'고 조롱거릴 수 있겠지만 그새 술자리 성향은 적당히 비우는, 그리고 지우는 식으로 술을 찾는 사람이 돼버렸어. 그새 늙어버린 걸지도.
아무튼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많은 술자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 둘 혹은 셋이 앉아 저마다 비워낼 만큼의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게 이젠 술자리의 낙이 된?
스물 다섯이 하는 얘기 치곤 좀 삭은 감이 있네. 분명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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