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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할인 25% 받아가세요. 25% 같은 20%로요!"

 

휴대폰 매장에 진열된 핸드폰을 둘러보다 기자와 눈이 마주친 모 통신사 영업 사원이 이때다!’ 싶어서 던진 영업 멘트다. 물론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통신요금할인 비율을 기존 20%에서 25%까지 확대할 것이란 발표만 있었지, 아직 확정은 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웬만큼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기본료 폐지에서 후퇴한 뒤 돌고 돌아온 사안인 만큼 이 길밖에 답이 없다는 것을. 하물며 약삭빠르기로 소문난 테크노마트 핸드폰 영업 직원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그들은 구매 상담을 의뢰한 기자에게 공시지원금을 지원받을지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지에 대해서 가타부타 묻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원하는 기종, 통신사, 번호이동 여부, 공시지원금 혹은 요금할인 혜택 선택 그리고 납부 방식 순으로 질문이 이어지는 게 관례지만, 판매 사원들은 익숙한 듯 이미 요금할인을 염두에 두고 계산기를 두드릴 뿐이었다.

 

기종 상관없이 할부원금보다 요금할인 권하는 분위기

 

 

통신기본료 폐지, 통신요금할인 비율 확대 등 정부의 통신비 절감정책 발표에 따라 통신업계가 일희일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판매현장의 상황을 알아보고자 23일 오후 2시께 기자가 직접 테크노마트 9층 이동통신 매장을 찾았다.

 

평소와 달리 인적은 드문드문했다. 30여 명가량 되는 사람들이 휴대폰 매장을 오가며 상담을 받고 있었다. 방문객들의 연령층은 대학생부터 노년층 부부까지 다양했고, 대개 둘 셋씩 짝을 지어와 단체로 둘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평일 오후라 이렇게 한산한 것인지 아니면 정부의 통신비 절감정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탓에 일단 시간을 좀 두고 천천히 살펴보자란 심리가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부천에서 온 S(?22)"정책 관련 문제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근처에 놀러 왔다가 원하는 기종 핸드폰 가격대를 알아보려고 잠깐 들렀는데, 사람이 너무 적어서 좀 의아했다."고 말했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발 디딜 틈 없이 가격을 문의하러 오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때와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기자 한 명이 핸드폰 매장을 둘러보며 지나가기만 해도 "원하는 기종 뭔가요?", "다 맞춰 드릴게. 일단 상담만 받고 가요" 등 호객 행위에 열을 판매사원들이었다.

 

"생각 잘했네. 아이폰 살 거면 지금이 딱 적기지."

 

원하는 기종이 있느냐는 질문에 애플 아이폰7이라고 답하자 돌아온 답변이다. 아이폰은 원래 공시지원금보다는 통신요금할인 요금제를 받아 개통하는 게 저렴하다는 게 판매사원 측의 설명이었다. 판매사원은 "요금할인 폭이 앞으로 25%로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나 해서 삼성 갤럭시S8 견적까지 청했다. 원하는 통신사를 대자 계산기를 몇 번 두드리더니 내 눈 앞에 ‘31’이란 숫자를 들이밀었다. 공시지원금을 지원받을지 혹은 요금할인 혜택을 받을지 말하기도 전이었다.

 

"당연히 요금할인으로 계산한 값이죠."

 

공시지원금을 지원받는 식으로 다시 계산을 요청하자 "갤럭시 S8의 경우 공시지원금이 평균 13만 원 전후로 낮게 책정돼 요금할인으로 하는 게 정석이다"라며 "요금할인 폭이 넓어진다고 하는 소식도 못 듣고 왔냐"며 되레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LGG6도 요금할인을 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동안 발품을 팔아 돌아다니며 얻은 가격 정보다. 갤럭시S830만 원 초반, 아이폰720만 원 중반, 엘지는 10만 원 중반에서 대체로 가격이 형성됐다. 최대한 싸게 살 수 있는 통신사로 번호이동을 하고 데이터무제한 혹은 69 요금제를 사용해 최대한의 요금할인을 적용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어딜 가든 모든 매장에서 기종에 상관없이 통신요금할인을 권했다. 2년간의 약정 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하면 높은 수준의 위약금을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 있지만, 공시지원금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그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현시점에서 공시지원금을 선택하면 오히려 가격이 뛴다며 계산조차 해주지 않는 업체도 있었다.

 

핸드폰 가격비교 커뮤니티 사이트인 뽐뿌’, ‘알고사등에서는 흔히 국내 제조사 핸드폰은 공시지원금, 아이폰은 선택약정으로 한다라는 게 구매공식처럼 퍼져있다. 일반적으로 국내 핸드폰의 공시지원금이 넉넉한 탓이다.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휴대폰을 구매하기 위해 테크노마트를 찾은 소비자들도 항상 공시지원금과 요금할인 혜택 그 사이에서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통신료 절감정책 발표 이후 이런 정석법이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올해 출시된 신제품에 통신사별 공시지원금이 낮게 책정된 탓도 있겠지만, 정부 정책이 요금할인 혜택 폭을 확대하는 쪽으로 옮겨감에 따라 기존 구매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입 대신 계산기로 얘기하는 불법문화 여전히 만연

 

신도림 테크노마트만의 불법문화는 여전했다. 가격을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고 계산기로 두드려 전달할 것. 이곳에선 판매자, 구매자 둘 다 가격을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이다.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은 휴대폰 상가들이 밀집해있는 구역으로, 불법이긴 하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핸드폰을 구매할 수 있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이후에도 법망의 사각지대에서 불법 보조금을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모종의 거래가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식대리점에서 정상적인 값에 핸드폰을 구매하는 고객이 이곳에서는 도리어 호갱(호구와 고객의 합성어)’으로 치부된다.

 

구매 상담 중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란 질문에 기자가 입을 꿈틀대자 매장 직원이 손으로 제지했다. 그러고선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기를 건넸다. 상시 단속이 벌어지는 곳인 만큼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과열경쟁으로 말미암은 재촉과 회유 역시 여전했다. 대학생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구매계약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태도를 보이자 즉각 판매사원이 "아마 통신요금할인 25%가 정해지면 사람들이 몰려서 나중에 이 가격에 못 살 거예요."라며 채근했다.

 

무리하게 가격 흥정을 이어가던 기자에게는 "원래 35(계산기 금액) 이건데 지금 사면 25(계산기 금액)로 해드릴게요"라며 "그런데 계약서에는 35로 나올 거예요. 차액은. 아시죠?"라 말한 뒤 반죽 좋게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소위 말하는 페이백(pay back)’으로, 계약체결 이후 지급한 돈의 일정 금액을 돌려준다는 말이다. 대리점들은 영업성과에 따라 통신사로부터 판매장려금을 받는데 이 중 일부를 구매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욱 싼 값에 구매가 가능하고 판매대리점 측에서는 판촉 효과가 좋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할 수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불법이다. 정부와 통신업계 간 불거지는 갈등으로 여러 변화가 예상됐던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 휴대폰 판매 현장. 하지만 변한 건 구매 트렌드뿐이었고, 암암리에 자행되는 이곳만의 불법문화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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