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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하나 갖는 것조차 사치였던 때가 있었다.

집 밖에 딸린 화장실 가기가 무서워 이부자리에 지도를 그리곤 했던 시절. 넌 초등학교에서 글을 읽고 배우는 학생이었지만, 정작 집안 사정에 대해서는 까막눈이었다. 왜 네 가족이 멀쩡한 집을 두고 할머니네 쪽방으로 기어들어왔는지, 가족 셋이 누우면 발 디딜 틈 없이 꼭 맞는 공간에서 지내야 했는지 너는 알지 못했다. 그저 동이 트기도 전, “다녀오세요.”란 말 드릴 새도 없이 일찍이 일터로 나간 어머니의 빈자리를 보며 그새 출근하셨구나.’ 정도만 가늠할 뿐이었다.

 

그래도 어린 게 본능은 있었는지, 넌 꾸준히도 네 공간을 찾아다녔고 또 원했다. 허나 탁주집 한켠에 딸린 좁은 방에서 온전히 너만의 공간을 찾는 건, 출근길 지옥철 그 속을 비집고 들어가 네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이불피면 안방, 해가 뜨면 거실, 밥상 피고 밥 먹으면 주방, 음식 치우고 책 얹으면 공부방이 되는 곳에서 개인의 방이란 존재, 그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럼에도 넌 끊임없이 너만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맴돌았고 할머니네 집 주변 찬바람 부는 방파제와 흰 등대는 이따금씩 그런 너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러던 중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집안에 옷장 하나가 들어왔다. 그 흔한 옷장조차 없었던 방에 들인 새 가구는 그 자태만으로도 고급스러워보였다. 그리고 드디어 네게는 너만의 공간이 생겼다.

 

옷장 아래로 난 2개의 서랍. 그게 네 생의 첫 너만의 공간이었다. 어깨너비의 두 배 가량 될 정도의 폭과 어린 네 손의 한 뼘 정도 될 법한 높이를 지닌 평범한 수납장. 비록 지친 몸을 누이거나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할 수 있는 방은 아닐지언정, 넌 너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 그 자체에 묘한 기쁨과 기대를 품었다. 별 특별할 것도 없었지만 굳이 이리저리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또 어디 때탄 곳은 없는지 살펴보기를 반복했던 그 시절의 너였다.

1층은 형 그리고 2층은 네 것이라고 마음대로 정한 뒤, 그간 아껴뒀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서랍 안에 배치했다. 단순히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네모난 틀 안. 넌 오른쪽엔 학종이 뭉치와 뽑기에서 뽑은 만화영화 캐릭터를 가지런히 놓았고, 왼쪽엔 딱지와 따조, 구슬 같은 것들을 넣어뒀다. 혹여나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애써 가지런히 정리해둔 서랍 안 상태가 어지러워질까, 조심조심 열고 닫곤 했었다.

 

그랬던 추억도 잠시. 후에 계단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다락방이 네게 생기면서 잡동사니들을 가득 품은 서랍은 자연스럽게 잊혀져갔다. 새 집으로 오면서는 정식으로 네 방을 갖게 됐고, 서울로의 상경은 비로소 네게 완전한 너만의 독방, 원룸을 가져다줬다. 싸구려 커피 마시는 걸 시작으로 지금은 티오피를 마시고 있는 격이다.

그런데도 불 끄고 누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다 원룸이 혼자 지내기엔 꽤나 넓다.’고 느껴질 때면, 네 머릿속엔 그 작은 서랍이 떠오른다. 빛바랜 형광별 조각들을 담아뒀던 옷장 아래 서랍 첫 번째 칸. 아무것도 몰랐던 네가 고이 넣어뒀던 만화 캐릭터 장난감들과 구슬 그리고 학종이는 서랍 안에서 아직도 여전한지.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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