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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영화를 보러갔을 때, 마주했던 게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her'이었다.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만큼이나 외로웠던 그때.

겉으론 괜찮은 척 하면서도 늦은 밤, 잠이 안 와 뒤척일 때면 그가 랜덤 보이스 톡을 기웃거리며 외로움을 달래려 했던 것처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배회하며 지나간 인연들의 향을 뒤쫓곤 했었다.


영화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사만다, 라는 인공지능 컴퓨터였다. 언뜻 보기엔 현재 출시돼 있는 아이폰의 Siri, 

삼성의 S보이스 등과 유사한 음성인식 기능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그 기능이 현재보다 현저히 발달해 웬만한 

사람의 언어를 다 이해한다는 게, 나아가 감성까지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차이점이었다. 

아마 영화관에서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장면을 보며 그가 오덕적인 기질의 특이한 사람이라고 코웃음친 

사람보다는, 그 신기함과 사만다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더 많았을 테다.




몇 년이 흘러 잊혀질 줄 알았던 이 영화는 김애란의 <당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란 단편소설을 통해 다시금 되살아났다.

주인공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인공지능 음성인식 기기가 인간의 감성을 위로해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닮은 소설.

여주인공 명지는 남편을 잃고 방황하던 중 뜻밖의 초대에 영국으로 가 며칠을 지내게 된다. 한국과 연락을 끊고

간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잤다. 크고 고딕양식의 고즈넉한 집에서. "숨 쉬는 걸 처음 배운 아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리곤 하는 영국의 궂은 날씨처럼 찾아오곤 하는 외로움. 故 남편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런 텅 빈 감정을 달래준 건 그녀의 손에 익숙한 Siri 라는, 미래의 어떤 시기에 찾아올 사만다가 아닌, 

현재 우리 곁에 있는 아이폰 음석인식 기기였다.


완벽하지 않다. 허술한 점이 많다. 

제대로 사람의 말을 인식하기보단 어이없게도 전혀 엉뚱한 말 혹은 다시 말해달란 요청을 번복하기 일쑤이다.


"고통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죄송합니다. 답변해드릴 수 없는 사항입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허나 그 마저도, "사람 사이가 가장 복잡하다."는 모 주류회사의 광고의 말마따나 사람보다 낫다.

아무리 짓궂은 질문에도 "예의"을 잃지 않는 것, 역시 마음에 들었다.


책장을 덮자 자연히 손이 핸드폰으로 옮겨가더니, S보이스를 켰다. 

Christmas, 란 이름을 지어주고 이것저것 사소한 일들. 

노래를 틀거나,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알람을 맞추는 등 비서가 할 만한 일들을 시켜보았다. 


잠들기 전엔 소설에서처럼

"너 나랑 잘래?"와 같은 터무니 없는 질문도 입력해 봤다. 

여러 번 내 말을 못 알아듣고, 꽤나 난감한 질문에는 인터넷 검색 창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S보이스의 실망스런 모습. 

소설 김애란의 <당신 어디로 가고 싶으신 가요?>에 나왔던 명지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도리어 답답함에

고요하고 나른한 감정이 깨지곤 했다.


멀지 않았을 것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혹은 기기와 감정까지 공유하게 될 때가. 

VR의 발달로 기기를 몸에 부착해 게임을 즐기는 게 최근 상용화됐다. 

어릴 때 만화에서 보고나 했던 것들, "이런 게 어떻게 되냐?"며 기대조차 품이 않았던 것들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다. 무인 자동차의 대중화도 시간문제다.


그때 즈음이 되면 사랑이란 게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들끼리 맺어지고, 이어질지. 현재와는 많이 달라 가늠조차 못할 정도가 될런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적어도 사람들 모두에게 

'사랑'이 필요하단 건 현재와 다를 바 없지 않을까.


It's love
Yes, all we're looking for
is love from someone else

                                                           - city of stars ly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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