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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article/Article ( Kor )

청춘고민

JinooChinoo 2017. 2. 7. 22:02

청춘, 이란 단어에는 혹은 사랑이란 단어가 무엇보다 잘 어울리겠지만,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근래 들어선 고민이란 단어에도 꼬리표처럼 청춘이란 말이 따라오곤 하네요. 청춘과 고민, 두 단어의 오묘한 궁합. 생각하면 할수록 번뜩하고 떠오르는 건 하나 없이 시름만 깊어지네요. 단지 청춘 옆에 고민을 갖다 뒀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켜도 괜찮은 걸까요.

 

풋사랑과 같이. 뭔가 열정 가득하고 대책 없이 말 그대로 오늘만을 위해, 나만을 위해 천방지축처럼 이 일, 저 일을 벌여버리는 걸 청춘이란 집합의 주된 원소라고 정의해버린다면. 어쩌면 머리만 컸던 고등학교 때부터 슬슬 사회란 때를 타기 시작하는 스무 살 초기까지가 마지노선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 이후의 역사는 먹고 살아보려고 벌인 지난하고 상스러운 흔적들인지라 청춘이란 놈 앞에서 말하기가.

회상해보면 점심은 무엇을, 잠은 어디서 잘 건지 같은 것들은 정하지도 않은 채 단지 자전거와 시간이 있단 이유로 친구들끼리, 근처라고 치기엔 좀 먼 봉하 마을과 간절곶까지 내달렸던 그때가 제 청춘의 개화기였네요. 황석영 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보고 작가란 직업이 멋있단 이유로 학교에선 잠을 자고, 밤과 새벽엔 어디로 튈지도 모를 글들을 마구잡이로 써내려갔던 그때가.



 

흔히 꼰대라 불리는, 삼촌뻘쯤 된 분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으레 예상하듯 과거사와 거기에 덧붙여진 허풍들로 안주가 차려지곤 하죠. 억지웃음을 띄워야 하고 이야기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 술값 걱정할 필요가 없단 것과 지난번 이야기와 달라진 부분을 찾아내 어디에 허풍이란 살이 붙었는지 알아맞히는 재미가 있단 것 정도.


그런데 스물 중반을 갓 넘기고 있는 제 나이 또래 애들하고 술을 마셔도 요샌 크게 다른 걸 못 느끼네요. 몇 년 살지도 않은 것들이 과거 얘기로 술자리를 채우고 있으니. 입대 전만 해도 신비스러운 대학 얘기, 빠질 수 없는 여자 얘기, 스무 살에 해야 할 것들이나 버킷리스트 따위같이 조금은 유치한 소재들로 각자의 앞날을 그려보곤 했는데. 이제는 미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건 모두가 암묵적으로 정한 규칙인 것마냥 침묵하네요. 회사 회식자리에서 업무 관련 발언을 삼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대학교 행사와 축제도 학과에서 직책 하나쯤 맡은 아이들만이 참석할 뿐. 요즘은 그마저도 줄고 있네요. 신입생으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각자의 바둑돌을 세상에 얹기 위해 취업이란 고독의 벽을 쌓는 건 예사가 됐고요.

 



꽤나 여러 번 돌려봤던 영화 스물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어른들이 우리 나이를 한창 좋을 때라고 하는데 공감할 수가 없다고. 다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그나마 희망이 아닐까, 라는. 그런데 이런 위로마저도 왜 이렇게 차선책 같이 들리는지. 문명화 발달에 발맞춰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가 다 짜인 지금. 그 줄에서 박탈당한 이들의 일 분과 일 초는 얼마나 더 촉박해야 하며 얼마만큼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와야 하는 건지.

 

주제를 받아들고 글을 쓰기에 앞서 내게 청춘이란 놈을 떠올리며 술 한 잔을 내밀었어요. 작은 소주잔 하나에 청춘을 앉혀 놓고 고민을 털어놓아 보라며 채근했죠. 그러니 이 녀석이 꼭 빵빵하게 부푼 풍선에 바늘을 갖다 댄 듯이 바로 울음을 터뜨려 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이것이 비단 필자, 혼자만의 오해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더군요. 오해라면 부디 이런 아픈 청춘보다는 밝은, 소주 한 잔 깡다구 있게 들이키는 청춘을 많은 이들이 가졌으면 하는데, 이것조차도 확신할 수 없네요.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마지막 문단의 마침표와 함께 이 글은 끝이 나겠지만 청춘과 결합한 고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란 것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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