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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남았으니 마지막으로 답안 제대로 적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시험 감독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새 잠 들었는지 눈을 떴는데도 몽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내 팔과 상체를 온 몸으로 지탱했을 책상 위에는 시험지가 펼쳐져 있었다. 시험 치는 도중에 잠을 자다니. 그래도 오랜만이었다, 이런 기분. 조금만 움직여도 바닥을 긁어 소름 끼치는 마찰음을 만들어 내는 철쇠 의자도 내가 졸 때만큼은 조용했나 보다.




2교시 논술, 작문 시험을 앞두고 교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여전히 붕 뜬 기분이었다. 뒤에 펼쳐져 있는 사물함 어딘가에 마치 내 이름이 새겨져있을 것 같았다. 10분 뒤 수업 시간이 가까워오면 어디선가 선생님 오신다!”란 소리가 들릴 법 하기도 했다. 올해로 스물여섯이 됐지만, 변하지 않은 고등학교의 모습을 보니 그랬다. 나만 나이든 것 같은 기분. 분명 시험을 망치고 잠을 잔 것까지 똑같은데, 나는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다.

 

서울신문 능력 및 인·적성 검사는 서울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치러졌다. 단순히 상식 시험을 기대했던 터라, 능력 검사에 다소 놀랐다. 오랜만에 수리 문제를 만났고, 여러 가지 도형의 모습을 봤다.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수를 다루는 학문 앞에서는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많이 촉박할 거란 시험담당관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시간은 도리어 남았고, 손도 대지 못한 문제들이 이어진 OMR카드 구간에는 여지없이 탑이 세워졌다. 역시나 난 변한 게 없었다.

 


가볍게 시험을 망치고 돌아가는 길.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길이란 시가 떠오른 건 왜일는지.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그 시절에도 난 글 쓰는 일 혹은 그 뭔가를 원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중. 돈도 벌어야 하고, 시류에 맞게 적응도 해야 했을 터인데 그 시절 동안 난 뭘 한 건지. 앞으로 얼마만큼의 시험을 보고 또 논술을 봐야 할지, 알 길 없지만. 그래도 그러나 킥킥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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